금오신화(3) - 취유부벽정기 정축년에 개성 사는 부잣집 아들 홍생은 얼굴이 아름답고 글을 잘하였다. 팔월 한가윗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포백과 면사를 평양에 내다 팔려고 배에 싣고 강가에 댔다. 성중에서 구경나온 기생들은 홍생을 보고 아양을 떨었다. 그 때 성중에서는 이생이란 친구가 있어 홍생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술이 취하여 배를 되돌리게 되매 홍생은 흥취를 진정할 수 없어 조그마한 배를 갈아타고 달빛을 그득 실어 노를 저으며 대동강물을 따라 거슬러올라가 부벽정에 당도하였다. 그는 배를 갈대밭에 매두고 사닥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그리고 난간에 의지하여 옛 도읍을 돌아보니 내 낀 외로운 성에 물결만 찰싹거릴 뿐이라 고국의 흥망을 탄식하여 여러 수의 시를 잇달아 읊었다. 시를 다 읊고 나자 그는 춤..
금오신화-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개성(開城) 낙타교(駱駝橋) 밑에 이생(李生)이라는, 열 여덟 살 된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말끔하고 재주가 비범하여 학문에 뜻이 있어, 일찍이 국학(國學)에 다닐 때 길가에서도 부지런히 글을 외우곤 하였다. 마침 선죽리(善竹里)에 최랑(崔娘)이라는 귀족집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16세쯤 되었고, 태도가 아름답고 수놓는데 익숙하며 시문에 능통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시를 지어 두 사람을 찬미하였다. 風流李氏子 窈窕崔家娘 풍류재자 이수재야 반달같은 최처녀야 才色若可餐 可以療飢腸 너희 재주 너희 얼굴 한번 보면 배부르다 이생이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갈 때에는 반드시 최랑의 집 북쪽 담 밖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하늘하늘한 수양버들이 그 담을 둘러싸고 있었다. ..
금오신화(1) 만복사저포기 전라도 남원(南原)에 사는 양생(梁生)은 일찍이 어버이를 여읜 뒤 여태껏 장가를 들지 못하고 만복사(萬福寺) 동쪽 골방에서 홀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고요한 그 골방 문 앞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는데, 바야흐로 봄을 맞이하여 꽃이 활짝 피어 온 뜰 안 가득 백옥의 세계를 환하게 밝혀놓았다. 그는 달 밝은 밤이면 언제나 객회(客懷)를 억누르지 못하여 나무 밑을 거닐곤 했는데, 어느 날 밤 그 꽃다운 정서를 걷잡지 못하고 문득 시 두 수(首)를 지어 읊었다. 一樹梨花伴寂寥 한 그루의 배꽃나무 외로움을 달래주나 可憐孤負月明宵 휘영청 달 밝으니 허송하기 괴롭구나. 靑年獨臥孤窓畔 푸른 꿈 홀로 누운 호젓한 들창가로 何處玉人吹鳳簫 어느 집 이쁜 님이 퉁소를 불어주네. 翡翠孤..
배비장전(裵裨將傳) * 해설 : 조선후기 풍자, 세태소설의 대표작으로서, 한때 판소리로 불려지기도 했던 작품이다. 여인에 혹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던 배비장이 주변사람들의 꼬임에 속아 넘어가 수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발가벗고 헤엄을 치는 수모를 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벼슬아치의 위선을 통렬히 풍자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관료사회의 관행을 따르지 않는 신출내기에 대한 공모적 조롱이 부각된 면도 없지 않다. * 자료 : 서강출판사 판 고전문학전집에 들어있는 내용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인생 천지간에 무론(無論)남녀하고 인종은 일반이언만 그중에 우열이 판이하여 남자에도 현인군자와 우부천맹(愚夫賤氓)이 있고 여중에도 청부열절과 음녀간희가 대불핍절(代不乏絶)하여 형형색색으로 측량치 못할 것은..
이규보, '슬견설(蝨犬說)' 어떤 손(客)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悽慘)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慘酷)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火爐)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손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微物)이 아닙니까? 나는 덩그렇게 크고 육중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